[아일랜드,코크] 블라니 성 (Blarney Castle)
정원으로 둘러싸인 블라블라 블라니 성 산책.
동네를 한 바퀴를 돌던 중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오랜만에 해가 구름을 해치고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아. 이런 날씨에 방 속에 틀어박힌다는 건 슬픈 일이 아닌가?’
집에 와서 일기예보를 확인했습니다.
“내일도 오늘처럼 맑은 날씨가 이어지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일기예보를 확인했습니다.
“어제와 다름없이 화창한 날이 되겠습니다.”
‘음 그럼 우선 우비를 챙겨야겠군.’
일기예보는 재미로 긁는 복권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막상 블라니 성을 가려고 하니 고민이 됩니다.
버스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사십 분. 버스를 타고 블라니 성까지 이십 분.
총 한 시간이 걸려요.
지도를 찍어보니, 집에서 도보로 한 시간 십 오 분이 걸린다는군요.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리가 아니었어요.
인도가 없는 왕복 이차선 도로를 지나가야 합니다.
이 길을 달리는 차 들은 코너길에서도 속도를 잘 줄이지 않습니다.
F1 레이서가 꿈이었던 분들이 운전대를 잡았어요.
못다 이룬 어릴 적 꿈을 이 도로에서 이룹니다.
게다가 묶여있는 개들이 종종 집에서 뛰쳐나오니 조심해야 해요.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추억이 되살아나는군요.
몇 번의 위험을 넘어서 안전하게 블라니 성에 도착했습니다.
한 시간 십 분이 걸렸어요.
우선 성을 한 바퀴 둘러봅니다.
성 아래쪽에 던젼이라고 쓰인 곳에 들어가 보았지만 텅 비었습니다.
(아무래도 몹 리젠 시간이 안된듯하네요.)
성 꼭대기에 올라가니, 성벽에 키스하는 장소가 보입니다.
올라오면 기념으로 벽에 입술을 부딪치고 가는 게 전통이라네요.
저도 수많은 남녀노소와 간접키스를 하고 성을 내려왔습니다.
성도 꽤 볼만하지만, 성을 둘러싼 정원은 더욱 매력적이에요.
우선 성 바로 옆의 독초 정원이 눈에 들어옵니다.
‘먹지도, 냄새 맡지도 만지지도 마시오.’
이른 봄이라 그런지 화려한 빛깔의 독초를 볼 수는 없었네요.
독초 정원을 지나 나무숲을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비수기라 사람이 없어 고요함을 느끼기 좋군요.
일찍 봄을 맞이한 꽃 앞에서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너는 왜 홀로 피었는가?’
꽃은 대답은 않고 바람에 따라 춤을 출 뿐이군요.
‘그게 왜 궁금한가? 지금은 춤을 출 때이니 함께 춤을 추게나!’
작은 폭포 앞에 멈추어 서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는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되묻습니다.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흘러간 옛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한 바퀴를 다 돌았습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며 셀카도 한 장 찍었지요.
이 수염 덕에 겨울을 참 따뜻하게 났습니다.
이제 봄이 왔으니 좀 다듬어야겠군요.